Askew
최원서 개인전
2025. 05. 31 - 06. 28
<빈 자리 한 점으로 오라>
빈 자리 한 점을 보러 오라.
미음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는 160센티미터 빈 자리 한 점을 도모하고 있는 전시가 열린다. 예술과 노동이란 작위作爲하는 것이거늘 이 전시는 도대체가 작위하지 않은 자리를 드러내고는 사람들 더러 보라고 권하고 있다.
시각 작가가 어떤 공간에 작위하지 않았을 때까지 그 공간은 비어 있는 허공에 지나지 않는다. 널리 아는 불교 개념으로 이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은 비존재나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만 말하자면 여기까지는 작위하지 않은, 곧 부작위한 상태다. 작가란 이 상태에 작위를 가하는 자다. 따라서 평면이든 입체든 전시란 예술 조형화된 시각 물질의 배치라고 할 수 있다.
'모로 / Askew'전이 제시하고 있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빈 자리다. 작가는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이 빈 공간을 이끌어내고 있다. ‘빈 자리’가 형성되도록 개입하므로써 작가는 작위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가가 작위할 수 없는 영역이나 공간에 관한 질문이다. 요컨대 작가는 공간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데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의 쓸모가 있다(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고 노자는 일찍이 말했다. 실용이든 창조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이 우주 상태에서 모양을 형성해서 빌려쓰고 나면 다시 애초의 빈 자리로 돌아간다.
한국 전통집에서 기둥과 보가 만나는 직각 부분에 끼워넣는 나무 장식 끼움새를 보아지(양봉 樑奉)라고 하고, 이 나무에 새기는 문양을 초각草刻이라고 한다. 덩굴풀 모양이나 꽃무늬(연화문 蓮花紋)를 거듭 새김질하는 터다. 옛 이집트 파라오 카프레 Khafre(Chephren)의 왕좌에 새긴 연꽃 lotus(하이집트 상징) 모티프motif 이래 널리 사용해온 이러한 문양은 젊은 작가 최원서를 만나 오늘 재창조되고 있다.
보아지 질료의 성질을 바꾸는 시도를 해온 작가 최원서는 나무를 알루미늄으로 대체하여 이질성의 충돌이 빚어내는 새로운 공간 효과를 연출해내 왔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는 고전성과 현재성, 자연물과 인공물을 교묘히 결합시켜내는 데 성공하고, 나아가 실용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허물어내고 있다. 이는 꽃이 열매를 맺기 위해 피지만 아름다움을 분리해낼 수 없는 일과 같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아지 초각 문양과 문양을 연속무늬로 작업하면서 발생하는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자기 작업(작위)이지만 작업일 수 없는 빈 공간이다. 여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같은 전시공간에 기둥과 보를 설치해서 ‘빈 공간 한 점’이 어떻게 생성되는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각 작가는 공간을 채우는 존재이지 좀처럼 공간을 내버려두는 자가 아니다. 최원서를 신뢰케 하는 지점은 이 비어 있는 자리다. 그 지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므로써 생기는 게 아니라 고도의 정교한 작업 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공空이거나 무無다. 실로 무용하므로써 유용한 참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노자가 말한 그릇에 접근해가고 있다고 봐도 좋다. 이 발상은 불변의 우주와 자연으로 인간의 공간을 회귀케 하는 힘이다. 그의 시력이 촘촘하고 가히 단단하다.
그리하여 기꺼이 한 번 더 말한다.
그대여, 빈 자리 한 점으로 오라.
서마립(예술비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