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숭고미, 지극한 오만
박일순 개인전
04.02 - 05.16, 2021
<감성의 숭고미, 지극한 오만> 예술가의 자기 존엄 미학
April 2 - May 16, 2021
PROJECT SPACE MIUM
서울시 종로구 평창20길 14, 1층
Tel. 02 3676 3333
모든 예술가는 자기 종교를 갖는다. 아름다움, 또는 미학추구라는 종교다. 거기에 수도승monachus은 한 명뿐이다. 창작자 자신이다. 미학을 향한 길을 잃을 때 그 신도는 세계를 방황한다. 종교인이 번민을 이겨내는 게 결국 기도이듯 예술가 또한 마찬가지다. 이때 필요한 건 오직 작업뿐이다. 이는 단지 기교와는 다르다.
예술가에게 미학추구는 자기 존립의 행위이자 근거다. 비평가, 대중, 소비자들의 인증은 외연관계다. 다만 인증에 의존할수록 작가는 허기에 시달리다가 자칫 존립 자체가 더 그치지 않는 공복에서 놓여나기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서 미술가를 해방시키는 것 역시 작업으로 잉태하는 자존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업자는 작가로서 존엄을 획득해나가게 된다. 자기 존엄이 빈곤한 작업물은 생산자의 자의식이 없는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림이나 조각 등 작품과 만나는 일은 단순히 작가의 손끝에서 나오는 기능적 산물이 아니라 그의 영혼과 교접하는 일이라야 한다. 작품의 발화점이 여기다.
박일순이 일생 동안 추구해온 것은 감성이다. 그에게 이는 현실 이전에 현실이자 미래 이후의 미래다. 예술이 원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미학의 근원 탐구를 그는 집요하게 거듭해왔다. 바로 미학 원형Archetype 추적이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움을 향한 과정은 어떤 것이고, 이때 창작자는 어디에 있는냐고 스스로 묻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은 이 감성의 수도승이 정진해 오면서 남긴 치열한 기록들이다.
감성이란 이 작가에게 상상력과 작업의 척후이자 통로이며 무엇보다 고행이다. 감성 소비자에게 이는 쾌락일 수 있겠지만 생산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쓰라린 고행이다. 박일순은 이를 모든 작업에 흐트러짐없이 기꺼이 자처하고 있다. 그는 이 원형질적 감성을 극히 수공업적인, 장인적 성실함으로 다듬고 분해하고 재구성하면서 자기 작업을 고유한 미학적 지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가히 감성의 숭고한 고행이라고 할 만하다.
이 미학을 관류하고 또 구성하고 있는 건 기품과 단순성, 그리고 이를 현현epiphany하고 있는 섬세한 감각이다. 이를 통해 그의 작업들은 극히 현대적 질감으로 고전적 미학을 획득하고 있다. 하물며 복제시대에 이는 실로 보기 드믄 성실한 성취다.
박일순의 작업물들은 어떤 형태나 언어로도 좀처럼 외부에 자신을 호소하는 법이 없다.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내보일 게 없어서도 아니다. 이는 박일순의 작업들이 예술가의 자기 추구와 자기를 지켜내기 위한 끝없는 도전의 성과물들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다. 작가로서, 곧 미학의 수도승으로서 지극한 오만이 있어야만 이는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 오만은 타인을 향한 상대적인 가치나 행위가 아니라 미학 추구에 대한 신앙적이기까지 한 숭고한 태도를 말한다. 이는 창작자만이 형성시켜내고 품을 수 있는 고난에 찬 특권이다.
오늘 그를 새로 읽어내는 일은 우리 사회 미학 추구의 재점검이자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감성의 융기와 분출이다. 작가는 어느 작품에서나 극도로 자기주장과 감성 이외의 개입을 차단하고, 본질을 향한 수도 행위를 왜곡할 수 있는 형태마저 억제하고 있다. 그는 외관 묘사를 통해 본질을 말하기보다 곧장 감성의 본질에 가 닿고자 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질료나 작업 행위, 주제가 따로 분리될 수 없다. 이 절제야말로 이 작가의 예술 행위와 수도 행위가 갖는 닮은 지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직관을 통한 시각 언어의 시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박일순에게 ‘달’(Green, 2020)은 식물화되어 있다. 이 식물성은 절제와 생략, 무한한 자기 존엄이 빚어내는 정진의 미학이다. 집요한 선들마저 고요하고 정제되어 있다. 가히 수도자가 세상을 향해 첫 눈을 뜨는 시선이다. 적요한 발견, 모종의 깨달음이 평면에서 밖으로 밀려나오기 직전 상태다. 그의 작업은 이처럼 평면 안에서 스스로 구조화한다.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은 그 앞에 놓여 있다. 관객, 곧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거기다.